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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에릭 호퍼 - 영혼의 연금술

Unknown9 2015. 5. 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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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도서관에서 받아 읽은책,



영혼의 연금술

저자
에릭 호퍼 지음
출판사
이다미디어 | 2014-02-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열정적 인간의 동기와 유형은?"만약 누군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요즘 책 값이 올라서 전자도서관을 부쩍 사용하다 문득 발견한 책, 사람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내려 놓게 만든 책이라 생각 한다.

내용은 좋으나, 번역이 아쉽다. 좀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가장 바쁘고, 정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을때 가장 탐욕스러우며, 

결코 도달할 수 없을때 가장 조급하고,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를때 가장 독선적이다.


분명, 지나침과 획득 불가능성은 서로 연관이 있다. -> 번역이 음.. 무리하는 것은 분명 그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일 지라.


2015-06-23


급변의 시기는 열정의 시기이다.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것에 적응할 수 없고,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변화에 맞춰 적응해 하지만, 급하게 적응하다 보면

자존심에 위기가 닥친다. 우리는 시련을 견디며 자기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급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적응자가 되며, 이들 부적응자는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며 호흡한다.


미래에 집착하다 보면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종종 과거를 재편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 것이다.

미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은 외국에 입국하는 것과 같다. 여권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자기의 상세한 과거 기록을 제출 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한 민족이 역사에 집착하는 것은 미래의 여권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자주 그 여권은 위조 된 여권이다.


2015-06-24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때보다 그 사람의 정신을 파괴할 때 권력 의식을 강하게 느낀다. 사람의 마음은 어느날 얻을 수도 있지만, 다음날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부심으로 가득 찬 정신을 파괴하면 최종적이고도 절대적인 것을 손에 넣는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죽음과 무(無)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절대 진리보다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자기의 장래성이나 불만, 의무와 죄에 대해 극도로 심각해진다. 그 이유는 단하나, 심각함이 자신을 위장하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인생의 시시함과 허무함을 감춘다. 어떤 마약을 탐닉하고 어떤 쾌락을 추구하더라도 심각함 만큼 호과적으로 인생의 끔찍한 진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


- 그래서 내가 심각한겨... 사는게 별거 없다는 걸 깨달으려 고하나? ㅎㅎ 제길. 이런 발번역이 있나....


인간이란 존재는 결코 심오하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인간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표면 아래 깊숙한 곳에서 뭔가를 탐구하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과일의 속을 찾는다고 영양분이 풍부한 바깥 부분을 모두 버리는 것과 같다. 인간은 구근*처럼 겉껍질만 있지 알맹이는 없다.


*구근 식물(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FfH2&articleno=6826523) 알뿌리 식물.


진짜 '가진 자'는 남에게서 빼앗지 않고도 자유와 자신감, 심지어는 부까지도 획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자기 잠재력을 개발하고 적용해서 얻는다. 다른 한편 진짜 '가지지 못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해야만 자유를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공포심과 의존심을 퍼뜨려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야 부자라고 느낀다.


그 동기에 따라 친절한 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다. 친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친절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기꺼이 칭찬하는 성향은 탁월함에 대한 열망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과 나누기를 꺼리는 영혼은 보통 자기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여기에서 인색함은 영혼이 빈곤하다는 징조이다.


다른 사람을 기꺼이 칭찬하는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를 꺼리는 사람은 상대방의 칭찬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 결국 영혼의 그릇이 작을 수록 감언 이설에 넘어가기 쉽다.


다름 사람의 평가가 그다지 많이 신경 쓰이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견해에 관대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갈망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중요성이 두렵지 않다. 두려움과 옹졸함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다른 사람에게 부정을 저지르지 않도록 자신을 단속할 수 있는 수단은 정의의 원칙보다도 동정이다.


강한 열정의 소유자는 보통 동정심이 없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느낌은 내면의 평정으로 고요한 상태가 되었을 때만 들리는 '낮고 작은 목소리'이다. 인간에 대한 열정조자 인간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현재의 자신과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어야한다.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위장으로 끝나든, 진짜 내면의 변화를 맞이하든, 이것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면 실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기 불만이 극도에 달해 새로운 정체성을 절실하게 갈망하는 바로 그 사람들은 자기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 이들은 달갑지 않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채 절대로 자기 자신을 바라 보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에 대한 불만이 아주 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위장할 수도 없을뿐더러 내면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다. 이들의 속은 뻔히 들여다보이며, 이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자질은 아무리 자기 연출과 자기 변신을 꾀히대 집요하게 남아 있다.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마도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일 것이다.


불만을 갖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갖는 것이다. 불만은 희망을 대신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 희망에 굶주린 사람들이 불평불만거리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불만이 희망을 대체하여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과 경재하고,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맞붙여 놓을 때, 우리는 과거의 불행과 오점에서 용기를 얻는다. 게다가 자기 자신을 경쟁자로 삼으면 동료에 대한 박애심도 변합없이 유지 된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갈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절대 평등을 주장하는 분야를 찾으면 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공산주의자는 좌절한 자본주의자이다.


관용에 관한 이야기.

관용에 대해서 충동적이거나 천부적인 구분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관용은 사고와 자기 절제의 노력이 필요하다. 친절한 행위 역시 심사숙고과 '사려'가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욕망과 이기주의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하는 행위나 태도에서 일종의 인위성이나 가장, 겉치레는 떼어낼 수 없는 요소인것 같다.

우리는 선량하고 예의 바른 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조심해야한다. 그런 위선이 없다는 것은 가장 타락한 잔혹성을 드러낼 능력이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겸손은 자부심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자부심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음... 


열정적인 사람은 대개 문화적으로 창조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이들만이 역사를 만든다.


절반 뿐인 진리에 독을 몇방울 추가하면 절대 진리를 얻는다. -> 어떤 경우가 있을까?


우리를 진정으로 설득하는 요소는 욕망과 두려움, 그리도 무엇보다도 허영심이다. 교묘한 선동가는 이런 내면의 요소를 불러 일으켜 조종한다. 해석이 정말..

(우리를 설득당하게 하는 요소에는 욕망과 두려움도 있지만, 그 위에 있는 것은 허영심이다. 영리한 선동가는 이런 내면의 요소를 이해하고 조종한다. 이런게 아닐까?)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때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때와 마찬가지로 녹초가 된다.


적이 우리를 위협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을 살펴보면, 이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서 증오를 빼앗으면, 그는 신념 없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지는 것은 싫어한다. 우리의 감정을 가장 크에 좌우하는 것은 물질적인 득과 실이 아니라 자존심의 득과 실이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 스스로도 자존심을 고취하라.


다른 사람을 보고 해야할 일을 배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지 말아야할 일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타산지석, 반면교사?


인생살이의 비결 중에서 최고의 방법은 우아하게 나이 먹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나도 동감.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 오히려 널리 선전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무례함은 강함을 모방하려는 약자의 행위이다.


우리는 도피할때 자유를 느낀다. 비로 프라이팬을 피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격일지라도... 


희망에 차 있는 사람이 비극적 인물이 될 수 없음은 아마도 진리일 것이다. -> 좋다. ㅎㅎ


사소한 불쾌감이 대단한 희생보다 참기 어렵다. 희생이 현재의 오점을 잡아내는 반면, 불쾌감은 현재를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기보다 영리하고, 보기보다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관심하고, 생각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망은 일종의 파산이다. 즉 희망과 기대에 너무 많은 돈을 탕진한 영혼의 파산이다.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마치 불굴의 정신을 비축하는 것과 같다.


행복의 추구야 말로 불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불행해질 수 있다.)






영혼의 연금술 2번 읽음. 2015_06_29. 동감이 가면서 정리를 한번더 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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